교육에세이
 먼북소리
read 16455 vote 0 2010.05.15 (23:28:23)

강성일선생님 002_crop.jpg

선생님 안녕하세요, 정원이 엄마입니다.

오늘이 스승의 날이네요. 항상 마음으로만 감사드리다가 스승의 날을 핑계삼아 게시판에 감사의 글을 남겨봅니다.

예전에 김연수가 쓴 책에서 읽었던 구절인데 글솜씨가 없는 저보다는 김연수의 글로 고마움이 더 잘 표현될 것 같아 여기 그 구절을 인용해볼게요.  

 

<유득공의 “부용산중에서 옛 생각에 잠겨” 는 다음과 같은 구절로 끝난다.

주인이 집을 물가에 지은 뜻은/물고기도 나와서 거문고를 들으람이라

쓸쓸한 물고기 같았던 내게도 거문고 소리가 들려온 것은 내 안에 있는 재능을 더 열심히 살려보라고 권유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군대를 다녀온 뒤로는 그를 거의 만나보지 못했지만 나는 시인으로 등단했고 번역서도 펴냈다. 불과 몇 년전까지만 해도 나를 비롯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 같은 물고기에게도 거문고 소리를 들려주겠노라고 물가에 집을 짓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그런 일이 일어난 셈이다. 살아오면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영어 가정법 문장을 어떻게 만드는지도 배웠고 3차 방정식을 그래프로 옮기는 법도 배웠다. 하지만 내가 배운 가장 소중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일 수 있는지 알게 된 일이다. 내 안에는 많은 빛이 숨어있다는 것, 어디까지나 지금의 나란 그 빛의 극히 일부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일이다.

유득공은 “부용산중에서 옛 생각에 잠겨”를 시작하면서 이렇게 노래했다. “직문 아래서 글 읽던 우리가 늙어가듯/ 가을 들어 연잎도 한철이 지나누나!/ 세월은 흐르고 흘러 서리 내린 연잎은 그 푸르렀던 빛을 따라 주름져 갈테다. 연잎이 주름지고 또 시든다 하더라도 한때 그 푸르렀던 말들이 잊히지는 않을 것이다. 내게도 그처럼 푸르렀던 말이 있었다. 예컨대 “글을 잘 읽었다” 라든가, “그거 좋은 생각이구나”, “네가 어떤 시를 쓸지 꼭 보고 싶다” 같은 말들 그런 말들이 있어 삶은 계속 되는 듯하다.>

 

아이가 스스로 뭔가를 해낼수 있도록 오래 기다리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아이의 마음속을 들여다 보는 일에 항상 부지런하시며, 아이의 생각에 귀기울여 자신만의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격려해 주시는 선생님... 그런 선생님의 모습에서 거문고 소리를 들려주기 위해 물가에 집을 지었던 주인의 모습이 겹쳐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아이에게 자신의 성장을 따뜻한 시선으로 곁에서 지켜봐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정말 든든한 일일겁니다. 부모이외에도 힘이 되는 지원군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겠지요. 아이에게 행운이 되어주신 선생님.. 감사합니다.

 

*첨부된 파일은 선생님께 드리는 정원이의 선물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강성일

2010.05.17 (02:24:29)

살아오면서 누굴 가르쳐보겠다는 생각을 품었던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아요. 아마도 '선생'은 제가 상상해 본 '무엇 무엇이 되겠다' 리스트의 가장 끝자락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지 않았을까 해요. 저를 휘감아 몰아치는 물결을 따라 아슬아슬하게 중심을 잡아가며 살아오다가 이제서야 주변 풍경들을 휘익하고 한 번 둘러볼만한 여유가 생겼어요. 정신을 차리고보니 주변의 사람들이 저를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있지 뭐예요. 문득 문득 그 모습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많아요.

아이를 키울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한채 아이를 얻은 엄마의 심정과 비슷할까요. 책임감과 기쁨이 뒤엉킨 운명의 한 조각을 받아들이는 것. 스스로 엄마의 자리를 받아들이는 건 아이가 가져다주는 사랑과 기쁨이 커다랗기 때문일거라 생각해요. 아이들과의 만남이 저에게 가져다주는 그 빛나는 영감의 순간들이 없었다면 저 역시 그 '선생님'이라는 자리를 마음속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거예요.

 

주인이 연주하던 거문고의 곡조는 물고기들이 뛰노는 물가에서 제 본모습을 다했을거란 생각이 듭니다. 제게는 그 만남을 표현한 글로 받아들여져요. 정원이의 열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저는 너무 풍족하답니다. 그것이 푸르름이니까요. 

 

p.s. 인용하신 김연수님의 글 한참이나 읽었어요. 저를 뒤돌아보도록 해 주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원아 선물 고마워~~~ !!! 근데 저거 내가 입고 있던 옷 그대로인데, 언제 사진을 찍었나? 아님 내가 모르는 사이에 드로잉을 했었나-_-?

박지은

2010.05.21 (18:54:03)

정원 어머님의 글과 강성일 선생님의 댓글이 마음에 와 닿아서

옛날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보채는 작은 아이에게 '부용산의 물고기'라는 제목으로

이야기를 지어서 들려주었지요. 꾸벅꾸벅 졸며 그냥 나오는데로...^^

연못속의 물고기가 거문고 소리를 듣고 연꽃으로 피어났다는 부처님 오신날의 얼렁뚱땅 동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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