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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채우려고 하는 욕구에 사로잡혀 있다. 빈 자리가 있으면 채우려고 한다. 빈 시간이 있으면 무엇인가를 해야만 한다. 도시에서 사람들의 걸음이 빨라지는 까닭은 빈 공간을 채우려는 충동 때문이다. 한 사람이 빨리 가면 빈 공간이 생기고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그 공간을 향해 돌진하는 것이다. 그렇게 무턱대고 채우려는 욕구는 사람의 리듬을 흩트린다. 자신의 속도를 잃어 낙오되는 일이 흔하다. 요행히 무리를 따라가더라도 결국 뒤따라가기만 하는 자신의 모습에 황망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게다가 일단 무리의 흐름에 휩쓸리게 되면 비어있는 것 의미 없는 것 쓸데 없는 짓은 조금도 허용하지 않는 긴장으로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 채움 중독이 되어간다. 아이는 커다란 여백의 존재이다. 아이의 투명한 눈에는 우스꽝스러운 사람들의 모습이 목격될 것이다. 달리고 또 달리는 사람들. 서로서로 꼬리를 물고 달린다. 달리는 어른들은 아이들을 가만 두지 않는다. 그 여백을 두고 볼 수 없어 채워버리고 싶은 것이다. 여백이 없는 사람은 누군가를 초대할 수 없다. 그는 누군가를 수동적으로 따라가거나, 혹은 자신을 앞서지 않도록 방해하는 관계만을 만들게 된다. 여백이 없으면 거리를 두고 가늠할 수 없다. 거리를 두어야 전모를 볼 수 있고 더 정확한 판단이 가능하다. 너무 가까이 붙어있으면 주도적으로 상황을 구성할 수 없다. 무리에서 벗어나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엄밀하고 객관적인 눈으로 무리를 볼 수 있는 것이다. 휩쓸릴수록 눈이 탁해진다. 아이가 친구가 거의 없는 왕따라도 타인으로부터 특별히 개입 당하지만 않는다면 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가 무리로부터 떨어져 있는 만큼 새롭고 선명한 자신의 시각을 가지는 시기가 될 것이다. 사람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징검다리 건너듯 점프해서 지나가면서 지식을 구성한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들로 이미지를 만드는 셈이다. 그러나 그림은 대상과 여백의 역동적인 결합이다. 대상만으로 화면을 구성할 수 없다. 대상과 대상 사이의 여백을 인식하지 못하면 결코 균형 잡힌 화면을 구성할 수 없다. 여백을 무언가로 채우려고 하기보다 한걸음 떨어져서 일과 여백이 만들어내는 전체적인 구성을 조망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의 시간을 유용한 것들로 빽빽하게 채우기보다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무용한 시간도 다른 중요한 스케줄과 함께 적절히 엮여야 한다. 그저 빈 시간을 기계적으로 주기보다는 매일 스스로 할 수 있는 일과 그 일을 완수하여 주어질 보상으로서의 자유라는 두 아귀가 잘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긴장은 이완이라는 보상이 보장될 때 활력이 된다. 무조건 꽉 채우는 일이나 그에 대한 반발로 그저 비워놓으려는 두 극단은 사람의 일을 완성시키지 못한다. 긴장과 이완, 일과 보상, 채우기와 비워놓기, 유용과 무용을 완성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그러면 이 두 극단은 상황에 따라 끊임없는 미세조정을 통해 균형을 잡아가야 하는 저울의 두 날이라는 사실이 명확해질 것이다. 기계적인 조정과 세팅보다는 사이클의 완성이라는 중심을 명확히 하고 상황에 따른 양 날의 균형을 적절히 잡아가야 한다. |
하는 생각에 손에 들고 있던것을 내려놓습니다. 늘 이런 생각으로 시소를 타고 있는듯 합니다. 다 가질수 없습니다.한쪽을 비워놓아야
손이 자유로이 움직일수 있듯이 늘 양손에 무언가를 쥐고는 무엇도 할 수없습니다. 5세 수업을 하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서 아이들을 보는 눈에 나의욕심이 들어갈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 마음이 조금 생기려하면 아이들은 어느새 답답함을 느껴버리고는 활동에
흥미를 잃어 버리는 경험이 있습니다. 나는 이날 이후로 아이들과의 만남에서 나의 욕심을 버리려는 연습을 합니다. 나는 저만치 보아주는 사람이고 주인공은 우리 아이들..그렇게 되면 우리 아이들은 이내 즐거워 자신의 세계를 자유로이 드러내며 즐거움을 찾는 것을 봅니다. 비움과 채움의 균형잡기 라는 제목처럼 나도 시소의 중간에서 늘 균형을 잡으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