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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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성일
read 17552 vote 0 2009.06.30 (17:37:49)

매 년 거듭되는 일인데도 올 해 역시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가 몸살을 앓은 일이 있다. 바로 “4월은 과학의 달입니다이다. 4월이 되면 과학상상화이야기로 한동안 시끄럽다. 미술마저도 훌륭하고 모범적인 학교생활을 위해서 선행학습을 시켜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는 세태 속에서 그것을 신경 써서 준비해주지 못한 나 같은 선생은 사교육계에서 경쟁력이 없는 선생으로 낙인 찍혀야 마땅할 상황이다. 5월은 가정의 달, 6월은 환경의 달. 가만히 살펴보면 1월에서 12월이 모두 닉네임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아이들에게 뭘 의미하는가 하면 이제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8살배기 아이들은 이제 대한민국 정부가 제공하는 21세기판 조디악을 기준으로 정해진 초점 정해진 경로를 따라서 본격적으로 훈육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한다. 그저 기념일을 기리는 켐페인을 위한 것이라면 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축제행사로 기획되어도 좋을 텐데, 실적과 상벌 위주의 관료행정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공교육 현장에서의 아이들은 이 때문에 상처받고 고달파지기 시작한다.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하던 날들을 신경 써가며 챙겨야 하니.

 

올 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은수는 과학상상화 그리기에서 하늘을 날아가는 신발을 그렸다고 한다. 참으로 깜찍한 발상이다. 주제에 대한 동기부여가 안 되어서 그냥 상관 없는 것을 그렸거나 아니면 자기 딴에 정말로 과학적인 미래의 것을 상상하며 날아가는 신발을 그렸을 수도 있다. 엉뚱한 상상력을 발휘하기를 즐겨 하는 은수의 캐릭터를 익히 알고 있는 나에게는 그 아이답다라는 생각도 든다. 어쨌거나 미래도시나 우주, 수중도시 등의 닳고 달은 판타지-사이비 과학 이미지들이 표준으로 통용되기에 은수 같은 아이들의 솔직하고 아이다운 판타지는 상상이라는 단어에 가 닿기 이전에 과학이라는 단어 앞에서 검열 당하기 일쑤일 게다. 한편, 은수와 동년배인 한나의 사정은 좀 다른 듯하다. 무척 개성적이며 자존심이 강한 이 아이는 새롭게 만난 이 학교과제에 대해서 100퍼센트 사기가 충전돼 있었다. 학교 담임선생님도 평소 한나의 그림실력을 인정하고 있던 터라 한나는 과학의 달 행사에서 꼭 상을 받아내리라 확신까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러 명을 선발하는 반대표에도 들지 못한 결과에 무척 낙담하고 말았다. 자신의 그림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대단했던 아이였기에 그 충격이 더 크게 다가온 듯하다.

 

사실 한나 같은 아이의 장점은 자신이 느낀 것을 정서적으로 집요하게 추구하는 데에 있다. 호랑이 한 마리를 그릴 때에도 못 생기지 않으면서도 무서움을 간직한 표정을 뽑아내기 위해 수 차례에 걸쳐서 다시 시도하는 그 집중력 말이다. 그것은 그림을 볼 줄 아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중요한 포인트이다. 자신의 느낀 정서를 섬세하게 조율하는 과정이야말로 테마를 서술적으로 나열하는 수준을 넘어서 표현을 압축적으로 만드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작품을 감상할 때 느끼는 감동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성향을 가진 아이들이 자신이 별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지 못한 주제에 대해서 그리 특별한 그림을 그려내지 못한다거나 혹은 자신만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무척 개성적인 그림을 그렸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한나의 탈락은 이 둘 중의 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개성적인 아이들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환경은 무척 안타까운 현실이다. 개인적으로 모든 아이들 그림대회에 대해 반대하는 이유는 그것이 내세우는 모토와는 정반대로 아이들을 제대로 망가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아이들이 그림대회의 상을 휩쓰는가? 일선 미술학원들에서는 그림대회를 위해 이렇게 아이들에게 준비를 시킨시킨다. 담당 선생님이 표본이 될 만할 그림들을 몇 장 준비해놓고 아이들은 그것을 무작정 따라 그리며 훈련한다. 똑 같은 스타일을 반복훈련하며 그 안에서의 미세한 기술 차이로 변별력을 차지하려는 모습은 어찌 그리 입시미술의 행태를 꼭 빼다 박았는지 모르겠다. 그것이 그림대회이던 입시이던 독창성과 상상력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만다. 확률 낮은 게임에 배팅을 하는 것은 무모한 모험으로밖에 치부되지 않을 뿐이다. 평가자의 입장에서는 평가하기 애매모호한 상상력에 점수를 주느니 눈으로 보이는 완성도와 기술을 위주로 평가하는 것이 편할 것이다. 실상을 아는 사람들은 알 것이지만 창의성을 제대로 평가할만한 괜찮은 미술대학교수들도 얼마 없는 판에 아이들의 그림을 평가할 수준이 되는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몇 분이나 계신지 모르겠다. 상을 탄 아이들은 벌써부터 남의 것 따라 하기에 익숙해져 버리고 상을 못 탄 아이들은 소외감과 열등감으로 괴로워하는 현상을 만들어내는 그림대회는 없어져야 하는 게 맞다.  

 

 

 IMG_8613-1.JPG   IMG_8681-1.JPG

 

 

아무리 교육적으로 좋아 보이는 주제가 주어진다 할지라도 아이들과 밀착된 경험이 없이는 훌륭한 주제 해석이 나올 리 만무하다. 해석이란 언제나 자신만의 느낌과 생각을 가지는 것으로 비롯되니 말이다. 자신의 느낌을 고스란히 담은 아이들의 그림은 평이한 해석을 넘어서 우리에게 생생한 감동을 전달해주곤 한다. 지난 번에 아이들과 함께 생명을 화제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모든 생명은 소중해요라고 너무도 당연하게 이야기하는 아이들에게 그럼 무더운 여름에 우리를 괴롭히는 모기 같은 것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물었다. ‘사람에게 해가 되는 것들이 생명인지 아닌지’, ‘그것들도 생명이라면 아끼고 보살펴야 되는지아이들은 다소 혼란스러워 하면서도 이런 저런 토론을 벌였다. 대부분의 커다란 이야기들은 어찌 보면 아무 것도 이야기해주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다. 그저 귀가 닳도록 많이 들어서 당연히 그런 거 아냐?’라고 생각할 뿐. 생명에 대한 작은 토론이 있은 지 몇 주 후 나는 이 주제에 대한 정말로 멋진 그림이 제작되는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다. 다른 아이들과 함께 꾸미고 있던 동물원에 넣으려고 그리고 있는 사슴드로잉이 나름 마음에 와 닿았던지 한나는 그 드로잉을 그냥 독립적인 그림 작품으로 발전시키기로 마음 먹었다. 한나는 그저 초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어 먹는 우아한 사슴의 모습을 그리나 했더니만 뒤쪽의 풀 숲 사이로 가만히 사슴을 노려보고 있는 사자 한 마리를 등장시키는 것이었다. 몇 가지 배경을 마무리 하고 나서 드로잉 위에 스스로 쓴 제목은 사자와 사슴의 생명이었다. 물론 한나는 그림에 등장하는 사슴과 사자 모두에 애정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 없다. 어쩌면 한나는 이전의 모기에 대한 아리송한 질문에 대한 자신의 답변을 이런 식으로 풀어놓았는지도 모르겠다. 인간보다 더 커다란 자연의 모습에서 그 답을 찾아보려고 고민했던 것은 아닌지. 한나 어머님의 말씀대로 집에서 즐겨 보는 동물 다큐멘터리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지지만 그 테마를 자신의 그림으로 해석하여 풀어 놓는 모습에 감화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10살이 다 된 순호는 작년에 친구들과 같이 길을 걷다가 우연히 죽은 새를 발견했다. 이 작은 죽음의 발견은 그 어떤 책들보다도 순호에게 많은 이야기를 건넸음이 틀림 없다. 무엇인가 느낀 이들은 모습을 그리지 않는다. 그들은 마음을 그린다.

 

 

woodpecker[1].jpg

 

 

* 상을 타보는 것은 아이에게 무척 강한 동기부여의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게 목적이 되어 버린다면 정작 중요한 것은 놓쳐버리게 되지요. 굳이 상이 아니더라도 아이의 노력에 대해 보상해 줄 수 있는 방법은 많이 있습니다. 그것이 어른들이 할 일이지요. 주변의 어른들이 변함 없는 신뢰를 보낸다면 그 아이는 정말 자신의 것으로 인정받는 기회를 언젠가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 어떤 아이들보다 강인한 모습으로. 


노란잠수함

2009.06.30 (23:03:20)

꼭 한번 집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을 아주 마음에 와 닿도록 글을써 주셨네요..

이런걸 우리 어머님들이 좀 아셔야 하지 않을까요..잡지에 넣어 주세요..ㅋㅋ

강성일 선생님처럼 많은 선생님들 그리고 부모님들이 고민하는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미술대회 포스터 등으로 동기부여가 충분히 된다고 생각하시는, 그래서 그 부분을 통해 아이가

자신감을 찾을 수있고 남 앞에 순서 지어서 서 있을수 있고..이렇게 생각해서 주변 미술학원 선생님들을

달달 볶아 데는 학생들과 어머님들이 많다는 것이지요.만약 학교에서 포스터 그리기 상상그리기 대회 같은게 없으면

동네에 즐비한 미술학원 정리가 저절로 되지 않을까 하는 재미있는 생각 잠깐 했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강성일

2009.07.01 (22:24:19)

한나의 드로잉 모습

 

프로필 이미지 이광서

2009.07.01 (23:26:04)

제목이 너무 착하오.

"대회따위 개한테나 줘버려!"

이쯤이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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