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더웠던 여름이었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한 여름의 무성한 열기에 제 속을 알차게 키워갑니다. 나무들은 더 많은 잎을 뻗어 분주히 볕의 기운을 몸 구석구석으로 옮기고 비를 받아내고 그늘을 만듭니다.. 그 그늘 안에서 매미들은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 연신 고래고래 소리치며 끝내 다가올 죽음을 거부하는 듯합니다. 이제 산 것을 살찌우는 여름도 가을 바람에 순하게 길을 내줍니다.

  지붕이 유리로 덮힌 테라스에서 우연히 말라비틀어진 화분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여름이라 사람의 관심 밖에 벗어나  한증막같은 그곳에서 혼자 버터냈을 외로움을 생각하니 저의 무심함이 부끄러워졌습니다. 마지막 한방울의 물을 찾기 위해 치를 떨었을 뿌리와 줄기의 몸부림을 자못 헤아려 봅니다.

 다행히 에어컨과 사람의 발길이 오가는 길목에 놓였던 화분들은 생생히 제 색을 지켜내고 있어 산 것과 죽은 것을 아이들에게 함께 보여주기로 했습니다.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의 차이를 쉽게 찾아냅니다. “산 것은 꽃이 피고 잎이나고 열매를 맺고 죽은 것은 그 반대예요.”  단순한 진리 앞에 생사는 분명했습니다. 허나 간명한 죽음 앞에 삶이란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 아이들도 여름의 볕이 더해질수록 알게 될 것입니다.

 일곱 살 종석이와 진호가 먼저 산 것을 그립니다.

DSC03705.jpgDSC03704.jpg

왼쪽이 진호가 그린 것이고 오른쪽이 종석이가 그린 것입니다. 두 친구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이들에게 살아 있는 식물의 화분 속을 그려보게 했습니다. 흙 속에는 뿌리가 있을테고, 더불어 또다른 생명체들이 공존하리라 생각해봅니다.

DSC03708.jpg DSC03703.jpg

 진호는 위로 뻗어 있는 줄기가 세 개라 뿌리도 세 가닥으로 나눕니다. 그리곤 물고기마냥 자유롭게 유영을 합니다. 물방울도 만나고 개미도 만나고 빈 공간에서 숨을 고르는 진호의 그림은 초록의 흙색에서조차 한결 여유로워 보입니다. 반면 종석의 그림은 꽉 차있습니다. 잎사귀 밖의 텅빈 공간조차 흰 물질로 빼곡히 들어차 있는 듯합니다. 한가닥에서 시작한 뿌리는 중력에 순응하며 아니, 이용하며 힘있게 수직으로 내리 뻗습니다. 진한 고동색의 흙, 뿌리의 갈색,  검은 색의 지네며 개미, 모든 것들이 확고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듯합니다. 응축된 힘이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화분의 외부를 잘라낸 위치 또한 반대입니다. 중력을 거스르듯 진호는 자른 부위를 위로 올려 하늘로 색칠하고 종석이는 무게를 그대로 던져놓습니다. 

 

 다음주, 진호가 결석한 관계로 종석이 혼자서 죽은 식물을 대합니다. 종석이에게 넌지시 묻습니다. 이것이 진짜 죽은 걸까 ,뿌리는 아직 살아 있어 물을 주면 살려낼수 있을까. 종석은 헷갈리나 봅니다. 

 P9150663.jpg    P9150664.jpg

 

바싹 마른 줄기는 자유로이 넘실거리고 뿌리는 개미의 공격에 간신히 한줄기 생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곧이어 종석에게 화분을 헤체해보자고 제안하자 망설이더니 조금씩 흙을 뜯어 냅니다.

 DSC03618.jpg DSC03622.jpg   ·

뿌리까지 말라 비틀어져 있는 것을 본 후 죽었음을 확인합니다. 근데 녀석이 ‘선생님 이게 뭐예요’하면서 손마디만한 것을 내밉니다. 자세히 살펴 보니 씨앗이 담겨 있었습니다. ‘종석아 씨앗을 잘 모은 뒤 흙을 담아 새롭게 심어줄까?’ 환한 미소로 답을 합니다.


DSC03625.jpg

 앞동산에 가서 흙과 이끼를 주워다 정성스레 심고 물도 주었습니다. 온전히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그리고 제 스스로의 무심함도 덜어졌으리라 위안도 해봅니다. 종석이에겐 삶이 죽음으로 죽음이 또다시 삶으로 이어진다는 생각이 아주 조금은 더해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마지막으로 새로 심은 화분울 그려보게 했습니다.

DSC03640.jpg DSC03646.jpg

단순히 씨앗만 그릴거라는 제 생각은 여지없이 빗나갑니다. 씨앗을 놓고 착한 벌레들과 나쁜 벌레들이 치열한 전투를 벌입니다. 혼자서 낄낄대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습니다. 화면이 점점 차오르는 것만큼 종석이의 생각도  무장무장  커 나가기를 바랍니다.